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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행동 심리학(B.F. 스키너)를 읽고나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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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행동 심리학(B.F. 스키너)를 읽고나서..

SudekY 2019. 11. 22. 16:02

스키너의 행동 심리학(B.F. 스키너)

 가벼운 마음으로 대여한 책이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만큼이나 책의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저자 스키너는 책의 시작에 행동주의와 관련된 수많은 오해 (약 20개)를 나열하면서 이러한 것들은 전부 오해라고 말하며 책 전부에 걸쳐서 행동주의를 설명한다. 마지막에는 앞서 말했던 오해들을 풀며 마무리한다. 전체적으로 번역이 잘되어있지는 않다. 하지만 번역을 누군가가 해줘서 책이 나온 것에 감사한다. 

 

 책의 페이지는 310으로 매우 짧지만 대략 3주에 걸쳐서 읽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중에 가장 오래 읽은 책이 아닐까 싶다. 말이 어렵게 쓰여 있는 것이 많고 이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말을 이해하기 힘들기에 메모장을 켜고 고등학교 때 비문학 지문을 읽으면서 '말하고자 하는바'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문단 문단을 번역하듯 읽었다. 그래서 조금 이해력이 올라가긴 했지만 그만큼이나 읽는 속도가 반비례가 되었다.

그래서 한번 독서 때마다 약 10~20페이지 정도를 읽었으며 결국 기본 2주 대여에서 1주를 더 연장하여서 3주에 걸쳐서 읽었다.

 

 행동주의에 호기심이 생겨서 읽은 책에 비하여 너무나 어려운 난이도였고 오랜만에 접해보는 상상초월의 번역이었지만 그래도 다 읽고 나니 뿌듯함이 생기는 것은 매우 감사했다. 내가 이 책에서 저자 스키너가 설명하는 행동주의의 모든 오해와 이해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왜 행동주의가 기존에 있는 심성 주의에 비하여 더 중요한 것인지 많은 설득당한 것 같다. 그리고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행동을 하면 생각이 바뀐다'라는 생각 또한 더 강해졌고 '생각'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가장 인상깊게 남은 것은 행동주의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 외에는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지와 사랑 기타 등등 어떤 내적인 상태를 뜻하는 단어들 말이다. 나는 평소에 생각이 많은 편인데 이것이 수반성에 따라서 하는 행동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존에 있던 생각들이 많이 뒤집혔고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심리학을 전공하지는 않아서 책 속에 단어들 중 모르는 단어들이 많았다. '구성주의'라는 말도 처음 들어봤다. 그래서 이런 단어들은 구글에 검색하면서 이해하면서 보았다. 말 그대로 비전공자가 읽으니 더더욱 어려운 책이라는 말이다. 필히 읽는 사람들은 각오를 하고 읽기 바란다. 읽으려는 사람은 책의 약 10페이지 정도를 읽어보고 빌리거나 구매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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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세계에 관한 주요한 문제들은 우리가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를 개선할 때에만 해결될 수 있다."

 스키너가 행동주의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핵심이다. 사람의 내면을 쳐다보는 심적인 것으로는 세계에 주요한 문제를 해결하기에 너무 효과가 떨어지고 비효율적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다고 생각한다.

 

 

"환경은 먼저 종의 진화에 큰 영향을 끼친 반면, 개체의 생장에도 다양한 종류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두 가지 영향이 결합한 것이 우리가 어느 한때에 관찰하게 되는 행동이다. 둘 중 어느 쪽에 관한 정보라도 인간 행동의 예측과 통제, 그리고 일상생활 해석에 도움이 된다. 둘 중 어느 한쪽에라도 변화를 가할 수 있는 한 행동의 변화도 가능하다."

 

 환경이 주는 인간의 진화적인 측면 그리고 성장하는 끼치는 영향적인 측면 두 가지가 어느 행동을 만들어(유발해) 내고 그것이 어느 한때에 관찰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측면에 한쪽에만 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 행동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도 이 생각에 대해 동의한다. 왜냐하면 나는 진화론을 믿고 환경이 사람을 만들지 사람의 생각이 환경을 변화시킨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변화하는 인간의 계기 또한 환경이 만든다. 어찌 보면 운명론적인 입장을 말하는 것 같지만 또 운명론적인 사고를 믿지는 않는다.

 

 

"우리도 우리 행동의 이유를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살갗 안의 내부 세계는 분명히 은밀하고 개인은 자기 개인의 관찰자라는 이점을 누리지만,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더 잘 알지도 모른다."

 정말 너무나 공감이 되는 말이다. 분명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신이 무슨 행동을 왜 했는지 모르는 이 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욕을 막 퍼붓고 뒤늦게서야 내가 왜 그렇게 욕을 했는지 후회한다거나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이 경우가 심화되어서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피해를 입히고서 뒤늦게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 이유도 모른 채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것이 비단 가상인물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우리 실생활에서는 내가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깊은 사고 없이 바로 대답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를 말할 때 대략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 " ~때문에.. ~을 하는데 ~ 위해서 "라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은 이 말은 내가 어떤 수반성 때문에 했다고 이실직고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시켰다고 하지만 결국에 앞선 행동이나 수반성이 작용된 셈이다. 사실 이쯤 되면 내가 그저 알고리즘에 돌아가는 로봇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 가서 무섭기는 하다.

 

 

"행동을 의지나 선택 행위로 돌림으로써 당혹감을 해결하려는듯하다. 우리가 굳이 의지 행위를 설명할 이유가 없는 한, 행동은 만족스럽게 설명된다."

 의지력이 소모성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런 실험 결과가 이런 행동주의적인 측면에서 어떤 것을 시사하는지 스키너 씨에게 질문해보고 싶기는 하다. 나의 작은 생각으로 사고해보자면 의지력이 소모성이라는 말은 아마 의지력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행동들은 대게 약화 수반성을 가지고 그런 수반성들은 더욱더 약화 수반성을 회피하게끔 만들게 하는 강화수 반성을 형성한다고 생각해본다. 내가 이렇게 행동주의에 관한 큰 생각 없이 단순히 수반성이라는 핵심 하나로 이것을 설명하였다는 것은 행동주의라는 것은 만족스럽게 설명이 되고 의지를 정의하면서 무엇에 비유하며 설명하는 것과 같은 심성 주의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추구는 탐구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달성함으로써 강화된 행동일 뿐이다. 행동은 강화를 받은 후에 비로소 추구된다."

 우리가 추구와 탐구를 하는 것은 무언가에 대한 보상 때문이다. 추구와 탐구를 하는 행동은 그 행동을 함으로써 오는 강화수 반성 때문이고 그전에 수반성에 의해서 추구와 탐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화자와 청자 사이에 공통적인 의미는 없다. 의미는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다. 우리는 사전에서 어떤 단어의 의미를 찾지만 사전은 의미를 제공하지 않는다. 사전은 기껏해야 같은 의미를 지닌 다른 단어들을 알려줄 뿐이다."

 우리가 의미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전부 상대적인 것이고 이 또한 사람마다 전부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에 대하여 그토록 많은 비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의미들이 전부 상대적이고 비유적인 것이라는 것을 까먹고 진짜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교사는 농부가 밭을 경작하듯 마음을 경작해야 하고 지식인은 포도밭의 포도가 특정 한 방향으로 여물어가듯 잘 여물어야 한다. 그렇지만 사유하는 사람이 노출되어있는 세계의 발달은 심히 간과되고 있다. "

 '사유'라는 것에 빠져서 정말 자신이 사유에 영향을 받는다고 믿고 있고 진짜 세계(외부적인)에 대한 관심을 꺼버렸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내적으로만 성숙 해지려고 하지 그러한 내적 성숙함이 외부세계에서 온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나도 이 말에 정말 동의한다.마음이라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갈고닦는다고 정갈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떠한 행위를 통해서 내적에 변화가 뒤따라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행동이 우선이다.

 

 

"규칙을 따르는 행동이 문명의 허식처럼 얘기되는 반면, 자연적 수반성에 따라 형성된 행동은 인격 혹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것처럼 여겨진다. 계획된 작품이나 잘 만들어진 작품을 의심에 시달리며 어떤 계산된 행동과 결부되기 쉽다. 직관적인 수학자는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수학자보다 우수해 보인다. 어떻게 친구를 사귀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배웠다는 계산적인 친구에게는 자연스레 반감이 생긴다. 수반성이 때때로 검토되거나 보고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없는지도 모르겠다. 수반성을 기술하면 수반성의 효과가 일부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나 나에 대한 수반성에 대해서 얘기하는 순간 해당 수반성이 파괴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누가 나에게 A라는 행동의 수반성으로 C를 얘기한다면 C를 듣는 순간 A는 파괴되어 수반성 또한 일부가 파괴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지녔기에 저자는 수반성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 많이 검토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직관과 같은 우리가 볼 수 없고 기술하기 힘든 것에 사람들이 더 열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는 직관이라는 것도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파헤쳐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직관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전부 어떠한 계기나 생각이 꼬이고 연결되어서 한순간에 드러난 것뿐이지 갑자기 뇌의 정보를 끌어모아서 하나의 정보를 창출해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창조적이지는 않다.

 

 

"행동주의는 언어도 행동이라고 상정하기 때문에 직관 같은 개념은 유령이나 꿈 따위처럼 과학적 연구에는 걸맞지 않는다고 간주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야말로 - 이 행동은 분석되지 않는 수반성의 효과라는 의미에서 - 행동주의적 분석의 출발점이다."

 위에 내가 말한 것과 동일하다. 다만 수반성이 보이지 않을 뿐이지 전부 다 엮여있다. 직관은 너무 비과학적이고 신앙적이다. 만약에 천재가 맨날 방 안에 갇혀서 평생을 보낸다면 천재성이 드러날까?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뇌가 발달하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천재를 만드는 건 약간의 유전과 환경이다.

 

 

"프로이트의 유명한 삼두 체계에서 초자아는 생물학적 강화물이 낳는 이기적인 행동을 제압하려는 사회적 처벌 실태의 산물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초자아라고 일컫는 것도 단지 처벌에 의해서 발생된 것이지 실제로 초자아라는 게 존재한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나도 동의한다. 무의식 의식 자아 초자아 그냥 도무지 인간을 설명하기 힘들어서 만든 개념이라고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이 어느 부분은 무의식적인 것이라고 밝혀지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연구하게 하고 실로 비효율적인 개념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이른 개념이다.

 

 

"그 밖의 프로이트의 역학, 혹은 방어 기제들도 같은 방식으로 다룰 수 있다. 그런 방어기제들은 의식, 무의식 따질 것 없이 마음의 심층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과정이 아니다. 거의 항상 처벌과 관련이 있는 강화수 반성의 효과일 뿐이다. 우리는 기껏해야 그런 방어기제들이 사람이 자신이(자아로) 살아가는 세계에서 효과적인 행동을 습득함으로써 처벌을 막는 방법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에 나의 생각과 동일한 말이다. 강화수 반성이 존재하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방어기제처럼)이지 강화수 반성이 없다면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마음과 내적 작용을 반박하는 이유는 그러한 작용을 검토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더 중요한 것들을 검토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내적 작용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 저자는 반박은 하지만 그것이 마음과 내적 작용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고 행동주의 연구에 그러한 내적인 면을 긍정하는 것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스키너는 행동주의가 심성 주의를 무시한다기보다는 연구에 불필요하여 배제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잘못 이해되어 생긴 오해를 풀기 위해 한말이다.

 

 

"사람들이 좀 더 효과적으로 행동하게끔 도울 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바꾸는 것이 먼저고 행동 변화는 그 뒤에 따라 나오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행동을 먼저 바꾸고 그에 따라서 감정을 바꾸는 것이 더 효과적인 프로그램이다."

 중독 행위를 끊을 때 엄청나게 트라우마적인 사건이 아니고서야 끊는 것은 매우 힘들다. 중독센터 같은 곳에서는 우선적으로 환경을 바꾸게 마련해준다. 일단 환경이 바뀌면 새로운 환경에서의 관련 생각 또한 쉽게 자라날수 있다고 전에 책에서 읽었다.

 

 

"결심은 자기가 만드는 일종의 규칙, 처벌 효과를 미래에까지 확대하기 위해 고안된 규칙이다. 그러나 나중에 가면 즉각적 강화가 더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술을 마시기 쉬운 상황을 피하는 것('유혹 회피')이 되레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누구나 새해에 결심을 한다. 예를 들어서 금연, 금주, 공부, 운동, 다이어트, 자격증, 취업, 결혼 등 말이다.

하지만 한 달 뒤에도 결심이 똑같은 감정으로 머무를까? 절대로 아니다. 결심은 3일이면 숨어버린다. 작심삼일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꾸거나 하고 싶다면 일단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아니면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 어떠한 행동이나 환경을 바꾸는 것이든 생각으로 하는 결심으로는 절대로 무언가를 바꿀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도덕적 인간인가, 도덕적 인간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둘 다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사람은 특수한 환경에 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그리고 우리가 그를 도덕적으로 일컫는 것이다."

 우선 스키너가 말하는 행동주의는 행동 외에 심적인 모든 것들을 전부 행동과 관련하여 보고 있다. 심지어 도덕이나 사랑과 같은 매우 고차원적인 감정 또한 행동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행동주의가 인간이 단지 당근과 채찍으로 움직이는 그런 기계라고 보는 오해도 생겼다고 스키너는 본다. 물론 전부다 오해라고 설명하기에는 솔직히 너무 해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차라리 그냥 행동주의는 당근과 채찍으로 시작하는 모든 것에서 시작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더 좋은 발전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지막에 해명을 하지만 솔직히 공감은 안 갔기 때문이다.

 

 

"심성 주의의 가장 큰 비극은 개인의 도덕이 사회적 환경을 회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시된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많이 주변 환경의 중요성을 사람들이 많이 깨달았지만 심성 주의가 한창일 때는 개인의 도덕성을 강조하며 개인의 내적인 것으로 전부 많이 관심을 돌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내적 성숙 또한 주변 환경과 사람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사람들이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시민의 돈이 정부에게 굴러간다는 결과는 마찬가지지만, 이 경우에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고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4장에서 보았던 아주 강력한 강화 스케줄에 통제받는 것이다."

 이건 나도 생각해보니까 너무 끔찍했었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유라는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만큼의 통제를 받는다면 자유라고 느낄 수도 있다. 아마 나중에 더욱더 심리 행동학적인 측면이 발달되면은 우리가 느끼는 자유의 본질이 사실 그저 강력한 강화 스케줄에 하나임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충격을 받거나 아니면 누군가는 진짜 자유를 찾을 것이다.

 

 

"그래도 시민의 돈이 정부에게 굴러간다는 결과는 마찬가지지만, 이 경우에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고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아주 강력한 강화 스케줄에 통제받는 것이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돈보다 가상의 돈이 더 많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이 진짜인 것처럼 믿음을 가지고 그런 믿음으로 무언가를 사고 거래한다. 이거야말로 정말 신기한 현상이 아닌가. 고작 눈에 보이는 종이 쪼가리와 사이버 은행의 숫자를 표기하는 방법으로 정부는 시민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왜 감정과 내적으로 관찰되는 것의 '본질'을 굳이 물어야 하나? 개인이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 있다는 이점만 취하고 행동과 선행 원인의 중간고리를 개인이 보고하도록 하자"

 우리가 가지는 환상이나 판타지를 왜 가지는지에 대해서 본질을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은 쓸데없는 낭비가 있을 수도 있다. 차라리 이런 생각은 어떨까. 내가 어제 새롭게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면 환상이나 판타지를 느낄 수도 있다.

이것이 차라리 환상이나 판타지의 본질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결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 내가 행동주의를 옹호하는 결정적 이유이다. 본질을 알 필요는 없다. 다만 전체적인 방향성만 알면 그걸로도 충분한 진척이다.

 

 

"그러나 자극이 조작적 반응을 '유발하는'것은 아니다. 자극은 그저 반응이 방출될 확률을 조정할 뿐이다."

 당근을 준다고 해당 행동이 바로 되는 것이 아니고 확률이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당근과 채찍은 단지 확률을 조정하는 것이지 전부가 아니라고 오해를 푼다. 전기를 준다고 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불이 들어올 확률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느끼거나 내적 관찰을 통해 아는 것은 생리학이 결국에 가서 발견하게 될 것에 비하면 지극히 적고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은 행동과 환경의 관계를 매개하는 체계가 아니며, 이 관계는 실험분석으로 밝혀진다."

 내적 관찰의 역할을 후에 밝혀질 생리학에 맡기고 우선은 눈에 보이는 행동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의식의 변화를 거쳐서만 세계는 구원받을 것이다.' 하지만 의식의 변화를 거쳐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말했지만 의식의 변화는 환경을 바꾸어야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 의식의 변화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핵전쟁보다 더 큰 위험이 해소되지 못한 두려움, 전염성 있는 공포, 잔인한 폭력에 대한 원초적 욕구, 격렬한 자기 파괴성의 형태로 인간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멸망할 것이다. 다행히도 공격점은 쉽게 접근 가능하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환경이다. 인간 행동을 환경의 관계 속에서 더 깊이 연구하는 생활방식이 인간 행동의 주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가능한 최선의 입장일 것이다."

 스키너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내적인 것만 탐구하다 보면은 결국에는 실효성도 없고 비과학적이라서 시간낭비인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세상은 변해가지만 이런 변화는 전부 내적인 것보다는 외적이고 눈에 보이는 행동이나 환경적인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왜 행동주의를 해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준다고 한다. 나도 동의한다.

환경을 바꾸어야 세상이 바뀐다. 언제까지 사람의 내적인 면에서만 기대서는 달라질 수 없다.

제도가 먼저 도입되면 문화는 차차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문화라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얘기이기도 하다. 환경을 바꿔서 어떤 이들이 우리에게 도움될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동주의의 성공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검은 조직의 인간 행동 조작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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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도 행동주의다. 사람에게 드러나는 것들은 행동적인 것이 전부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내적인 면에 성숙함을 알 수 없다. 최소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다른 이가 방금 전에 무엇을 했다는 사실뿐이다. 

AI가 발달하고 있다. 우리가 AI 개발을 하면서 얻게 되는 사실은 인간의 행동의 빅데이터를 모아보니 비슷한 패턴이 발견되며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나 아가다 보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연구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것이 매우 나쁜 쪽으로 쓰인다면 그것은 매우 안타깝지만 이런 문제는 비단 행동주의의 문제만은 아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거나 미국이 계속적으로 총기사건이 발생한다거나 매일매일 누군가가 자살한다거나 하는 행위를 행동주의에 대한 연구로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결과가 아닐까 싶다.

 

 행동주의에 관한 끝판왕 책을 읽으면서 행동에 관한 생각들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다음에 읽을 책은 완벽주의와 자기 합리화에 대한 책이다. 가벼운 책으로 골랐다. 너무 어려운 책을 읽다 보니 뇌가 정지한 것 같다.

아참.. 뇌가 정지한 것도 하나의 행동인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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