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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합리화의 힘(이승민)을 읽고나서..

SudekY 2019. 12. 3. 14:41

자기합리화의 힘(이승민)

 전투에 참가한 한 전사가 자신의 방패는 나약함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전투에서 항상 두 개의 검으로 날아오는 검과 화살을 막았다.

하지만 그것은 몇 번일 뿐 결국 자신의 몸과 손에는 수많은 흉터와 상처가 생겼다.

몸에 상처가 많은 날에는 자신의 검이 더 좋지 못했다고 생각했으며 검을 더 날카롭고 가볍고 강하게 그리고 검을 더 잘 다루기 위해 매일매일 수련을 했다. 가끔은 숙련된 검술로 화려해 보였지만 그것은 겉만 화려한 실용적이지 않는 방법이었다.

 

 방패가 없는 전사는 용감한 것이 아니고 멍청한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러한 멍청한 용사였다. 방패를 들지 않았었다. 물리적인 방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방패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방어기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방어기제란 나약함의 상징이며 그런 것들은 자신이 마주 보야할 적을 등 돌리고 회피하는 것이며 진정한 발전은 적에게 맨몸으로 이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전투에서 승리하여야만 더욱더 강해 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상처와 흉터만 남았고 흉터는 아물지 않았다. 결국 내가 훈련한 것은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방법과 두려움을 회피하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흐름으로 나는 매번 소진증후군(번아웃 증후군)이 왔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를 나약하다며 더욱더 채찍질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변호하는 법을 몰랐다. 거짓말도 할 줄 몰랐다. 남 탓도 할 줄 몰랐다. 착한 아이 증후군은 아니었지만 이타적으로 살고 싶었다. 뛰어난 인재가 되고 싶었다. 게다가 이러한 경향은 남을 의식하는데 더욱더 강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남을 의식할수록 완벽주의 성향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고 적어도 완벽주의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나마 강한 방법이고 전부인 줄 알았지만 점차 나를 갈 곳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갔다.

전 책 '완벽의 배신'에서 이러한 부분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완벽주의 성향에 대한 파악까지 지금까지 오면서

이제부터 나는 나 자신을 이제 변호해야 하는 방법을 다시 익혀야 한다.

이 책은 방어기제와 그리고 가장 대표적 방어기제인 자기 합리화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그리고 고정관념을 부순다. 방어기제는 절대로 나약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맞는 말이다. 전사가 자신의 방어하는 법을 모르는 것은 전사의 기초적인 교육도 못 배운 것이다. 전투는 살아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의지와 생명이 자신을 방어할 수단 하나 없이 생기지는 않는다. 우리는 방어기제를 너무 부정하며 안 좋게 바라본다. 하지만 저자는 방어기제라는 것이 자신을 현실에 안주하는 그런 면포 다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방패와 같다고 얘기해준다. 

 

 왜 이러한 방어기제가 이런 식으로 매도를 당했을까?

저자는 자기 계발서들이나 자기 계발 영상들이 방어기제를 현재에 머무르는 안 좋은 것으로 쓰거나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어렸을 때 읽은 자기 계발 서적들이 자기 합리화를 안 좋은 것이라고 배웠고 그래서 방어기제를 최대한 안 쓰려고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잘못되었다. 방어기제의 사용 여부는 절대로!! 누군가의 성숙함을 따지는 척도가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쓰는 방어기제와 대표적인 자기 합리화는 절대로 나약함의 상징이 아니다.

방패를 들지 않고 칼만 두자로 드는 자가 오히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두려움에 떠는 나약 한자다.

자기 합리화는 자신의 내적 생명력을 보호하고 유지하여 개개인의 능력에 몰아세우고 쉴 틈 없이 채찍질하는 사회에서 우리 자신이 행복의 길로 가게 해주는 방패라고 저자는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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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은 경험의 힘을 따라갈 수 없다. 교과서보다는 현장학습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부모를 닮으며 자라 간다. 때로는 의지보다도 환경의 영향이 훨씬 크다."

 책이라는 것이 간접 경험을 가능케 하지만 어떠한 것도 직접 경험한 것만 못하다. 그래서 책을 읽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책이 아닌 글씨를 읽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이런 식으로 경험이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원하든 원치 않든 방어기제로서 동일시라는 것을 만든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의 아버지를 싫어하여도 커서는 자기도 알코올 중독자가 돼있는 것처럼 말이다. 부정하고 싶어도 환경과 경험의 영향이 이처럼 강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성숙한 방어기제를 살펴보면 마치 도인이나 종교인들에게 어울릴법한 내용들이다.

내가 나를 방어하는 방식들이 나의 사람됨을 결정하는 것임은 아니라는 것을 유념하자"

  이타적이거나 금욕적인 것과 같은 방어기제는 매우 성숙한 것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저자도 이러한 것들이 매우 어렵다고 말해준다. 누가 금욕적이고 이타적인 것이 정신건강과 인생에서 중요한 것임을 모를까

하지만 정말 어렸을 때부터 그러한 환경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면 매우 지키기 힘든 규율들이 많고 무엇보다 많은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성숙한 방어기제를 가졌다고 하여서 그 사람이 뛰어난 사람임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한 번쯤은 성인군자가 되어 보는 것도,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 되는 것도 괜찮다."

 나는 이런 두 가지 성향을 가진다는 것에 엄청나게 반감을 가졌었다. 사람이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성인군자가 돼보고 가끔은 본능에 충실할 줄도 알아야 한다. 변명을 왜 해야 하는가. 원래 인간이 이런 식으로 불안정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내가 어떤 날은 본능에 충실하고 어떤 날은 성인군자가 되는 것이 양심에 문제를 일으킬까? 이런 식으로 생각을 가진다고 해서 길가다가 본능에 따라서 쓰레기를 버리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자기 합리화를 한다고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여러 가지 가면을 쓴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진실되지 못하다.

 

 

"저 사람은 행동변화를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합리화를 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마음속에 만연해있다."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 합리화를 하지만 합리화라는 것이 전부 행동변화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합리화를 한다면 우선 방어적이고 보수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ringer)는 이러한 현상들을 유명한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쉽게 이야기해서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상태에 불편하기에, 이러한 괴리를 바로잡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웬만한 사람들은 안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수많은 오해들이 생겨났다. 자기 개발서들이 이 이론을 가져다 쓰며 방어기제의 단점을 부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흑백논리이며 한쪽만 헤드라이트를 보여주어 극히 단점만 보이게끔 하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내가 상심할 때마다 위로를 건네줄 존재가 우리 주변에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달콤한 위로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고, 그 위로의 레시피는 바로 합리화이다."

 항상 주변에서 나의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모든 것을 이해해주며 대화 가능한 친구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

각자 살길을 살아가다 어쩌다 한번 만나 대화하는 것이 전부다. 자기를 위로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자신뿐이다. 게다가 요즘 세상에는 더욱더 주변에 사람보다 스마트폰과 가상현실이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이고 직접적인 위로를 주지 않는다. 누군가가 칭찬해주지 않아도 나는 나 자신을 칭찬할 수 있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내면은 상처가 날것이고 흉터로 남아서 무의식 속에 저장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방어하는 기술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합리화이다.

 

 

"불확실함을 인정하고, 세상 모든 일에 이유가 있지는 않으며 너무나 다채로운 사람들이 많음을 이해하고 인정한다면 우리가 합리화를 할 일들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마음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이성적인 마음을 유지' 하기 위해 '이성적인' 합리화를 하는 것이다. 내 이성과 지식을 모아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낸다."

 불확실함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안다. 하지만 지식으로 아는 것과 체득하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체득은 매우 어렵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것, 돈을 멀리하는 것, 평화를 추구하는 것의 이로움을 알고 있다. 이거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세상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가 이해력이라는 강력한 검으로 세상의 검을 막는다 하여도 방패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 그럴듯한 이유라는 방패를 만들어서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남을 이해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보호 못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어떻게 보호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 이것은 즉 나의 자존감이다. 결국 자신감의 정도가 합리화의 밑천이 된다는 이야기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스스로가 만들어낸 그럴듯한 설명들에 더욱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자신감은 남이 나를 보는, 자존감은 내가 나를 보는 시각이다. 내가 나를 남보다 못하게 본다면 내가 하는 생각과 믿음은 흔들리고 방어기제 또한 확실히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그런 커다란 것보다 작은 성공을 여러 번 하면서 높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 작은 성공이 자존감을 그리고 자존감이 믿음을 그리고 믿음이 자기 합리화를 하고 결국에 우리는 방패를 손에 쥘 수 있다.

 

 

"내 인생이 괜찮았는지 혹은 그렇지 않았는지를 결정하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하루를 돌아볼 때 불만이 많다면 감사일기라는 것을 작성하여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왜 이것을 노력이라고 칭하냐면 실제로 행복이라는 것은 가만히 있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것도 자신이 최대한 긍정적인 면들을 보려고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지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은 절대 아니다. 행복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을 잘 완수하는 데가 아닌 자신의 행복을 차지하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자기 합리화라는 방패를 들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을 때 더욱더 쉽게 할 수 있다.

행복은 믿는 대로 오는 것이지 오는 대로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남의 탓을 하기보다는 내 탓을 하는 것이 건강한 방식이라고 배운다. 나의 성찰과 발전을 위해서 말이다."

 나도 항상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나의 책임을 찾는 것이 성숙하고 성인이 되는 길이며 이 또한 도를 닦는 하나의 과정이며 성장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가 반드시 인간을 성숙의 길로 가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생각이 우리 대부분을 자신을 깎아내리는 행위와 동반되어서 찾아오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정말 성숙한 사고란 남보다 나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 탓이라고 해 그게 편하잖아ㅋㅋ" 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임종의 순간에서도 '이만하면 잘 살았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오랜 기간 다져온 합리화의 결과이다. 인생은 수많은 합리화로 점층 되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나를 위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싶으며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싶다. 하지만 힘들 것이다. 아마 어떤 암이나 질병 때문에 호흡이 곤란해지거나 의식이 희미해지거나 찬바람이 가시처럼 피부를 찌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을 죽을 때까지 유지한다면 긍정적인 사고와 자기 방어가 마지막이라는 순간에도 나를 보호해주며 최대한 행복하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좋은 죽음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받아들임은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임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합리화는 그래서 좋은 것이다. 어떠한 치밀한 준비가 없더라도 그 상황에 맞게 적절한 재료들을 마련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에서는 교리를 외우고 호흡에 집중하라고 하거나 매 순간을 의식하라고 하는 방법을 쓴다. 이는 실제로 효과가 있다. 하지만 매우 어렵고 실천하기란 더더욱 힘들다. 인간은 종교를 가질 수 있지만 종교를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리화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저 내가 나 자신의 편을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보다 쉬운 것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그에 따라서 위로받는 감정까지 같이 오니 얼마나 뿌듯한 것일까.

 

 

"우리가 합리화를 해야 하는 이유는, 가끔은 세상이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남들도 똑같이 불합리를 견디며 살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토록 가학적인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 비난받고 공격당할지 모른다."

 지금 현대사회는 개개인의 능력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 심하다. 서로가 자신을 회사 또는 단체로부터 입증받기 위해서 시험공부를 하거나 자격증을 쌓고 어학능력을 키우거나 미래를 계획하며 쉴틈을 주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자존감은 떨어지게 되고 상대평가에서 이기기 위해서 비교를 참 쉽게 하게 된다. 나의 성적이 누군가 보다 낮을 때 나는 그보다 떨어지는 인간이라고 단정 짓는다. 남이 나를 공격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내가 나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방어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러한 방어는 자기 합리화이며 이는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세상에 도전할 여유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 '진실이 어떻든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이 된다.' 나에게 필요한 상황이라면 우리는 1+1 = 3이 될 수도 있다. 합리화를 믿기만 한다면 세상 무엇보다 나를 강력하게 지켜주는 방패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왜곡된 뉴스와 날조가 퍼지고 있는 가상세계에서 진짜 진실이 무엇인지 찾기란 힘들다. 그만큼 진실이라는 것은 어떠한 관점에 따라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가짜 뉴스는 나쁜 것이지만 선의의 거짓말이라면 괜찮다. 특히 우리 마음속에 페이크 뉴스를 만들자. "이 일은 힘들 거야" 라기보다 "어차피 이거 말고 다른 일은 재미없어"라고 말이다. "너는 이걸 분명히 못할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내 능력이 부러워서 그런 소리하니?"라고 받아칠 줄 아는 뉴스가 필요하다. 진짜 어떤 일이 힘든 것인지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펙트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펙트가 아닌 어떠한 펙트 앞에서도 나 자신을 믿고 위로해줄 수 있는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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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정말 나에게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 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정말로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왔다. 나의 완벽주의 성향을 내려놓게 되었으며 이제 더 이상 나를 채찍질하지 않는다. 합리화라는 것이 도전을 방해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도전을 방해한 것은 합리화가 아니라 두려움이다. 내가 나 자신을 응원하니 지속적으로 어떤 도전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 나를 몰아세우지도 않게 되었다. 너무 앞만 보지 않고 주변을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이제 나도 방패를 들었고 이 방패를 더욱더 견고하고 그리고 한쪽의 칼은 두 개의 검 못지않게 강하게 만들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방패로 막고 칼로 반격을 하는 방법을 갈고닦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곧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믿는다. 

 

 이 책을 정말로 추천한다. 평점 5.0/5.0이다. 완벽주의자 거나 번아웃 증후군이 많이 온다면 꼭 추천한다. 아니 꼭 읽어보자!!!. 아마 그 사람들도 나처럼 나 자신을 나 자신이 괴롭히는 사람일 것이다. 합리화하자. 행복 회로는 남이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남이 불을 지펴주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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