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터틀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질 볼트 테일러)를 읽고나서.. 본문

Humanities/book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질 볼트 테일러)를 읽고나서..

SudekY 2019. 12. 5. 16:15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질 볼트 테일러)

 우선 이 책의 저자 질 볼트 테일러는 뇌과학자이며 뇌졸중을 37세에 걸렸고 그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가진 행복에 대하여 깨달은 바를 전달하는 책이다. 책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이 주제로 TED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었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한 번쯤 보기를 추천한다.

 

 

 영적은 무엇일까?

내가 최근에 읽은 책 '신의 유전자'라는 책을 읽을 때에는 인간이 가진 본능이며 생물학적으로 우뇌스러울 때(우뇌 경향) 즉, 어떤 감정과 공감각에 대한 인식이 높은 사람들이 대게 영적 체험을 많이 한다고 소개했었다.

 

 이와 관련해 좌뇌가 마비되었을 때 즉, 우뇌만 작동할 때는 어떻게 될까? 정말로 영적 체험에 가깝게 느낄까?

질 볼트 테일러는 뇌과학자이며 이와 관련한 경험을 뇌졸중을 통해 겪었다고 얘기한다. 뇌졸중의 순간일 때 좌뇌 혈관이 터졌고 그렇게 좌뇌가 마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뇌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이와 관련하여서 자신의 뇌과학자로서 뇌졸중을 겪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직접 경험하는 것은 매우 놀라운 경험일 거라고 생각을 했었고 이런 체험을 꼭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좌뇌는 기본적으로 논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뇌를 보완하고 우뇌는 반대로 좌뇌를 보완하는 역할로 우리는 두 개의 뇌 사이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좌뇌의 논리성이 힘을 잃고 우뇌로 세상을 바라본 테일러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견과 관념이 깨지는 것을 보았고 그 안에서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내가 예전에 읽은 책에서 명상에 관해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뇌의 정보흐름을 명상이라는 수행이 끊어서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가 오는데 이를 열반이라고 하였다.(※ 열반이란 흔히 종교에서 깨달음이라는 경지를 표하는 단어다.) 그리고 책에 나온 테일로 또한 자기가 겪은 경험을 열반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열반에 일으는 길이 좌뇌를 버리고 우뇌를 훈련시키라는 것이 아니다.

테일러는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에서 벗어나서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열쇠는 우뇌에 있다고 한다.

 

 우울증을 겪는 이유는 호르몬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는 경우를 따질 수도 있지만 대게 생각이 하나의 틀에 갇혀서 생기는 경우도 많다. 왜 우리는 사고의 틀에 갇히게 되는 것일까? 이 책에 따르면 좌뇌의 논리 때문이다.

좌뇌는 보수적이다. 기존에 하던 거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완벽주의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를 지속할 경우 현실에 갇히게 되고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서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 우울증에 걸리면 여행을 가거나 기존에 환경에서 벗어나라고 하는지 우뇌의 활동과 관련지어 보면 이해가 간다. 우뇌가 소유한 감정이나 틀에 벗어난 사고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현실이라는 벽은 좌뇌의 편견이 만든다. 세상이 힘들면 죽기보다 그냥 포기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삶을 말고 좌뇌를 말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이런 감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힘들 것이다. 좌뇌를 비활성화시키고 우뇌를 활성화시키는 비법이 어디에 있는가. 이 책에서도 명상을 하거나 감각에 집중한다거나 여러 방법이 나온다. 나는 그보다 이전에 읽은 책 '자기 합리화의 힘'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자기 합리화를 통해 자신을 보호할 줄 안다면 그때는 감각에 집중하기나 여러 가지 명상을 실천하거나 종교를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비록 나는 명상을 하지 않고 종교를 가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여러 책을 보아온 결과 이런 행위는 뇌 건강과 마음건강에 좋다고 한다. 

 

---------------------------------------------------------------------------------------------------------------------

 

 

"대신 서서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내 삶과 나를 단단히 묶어놓았던 끊임없는 뇌의 재잘거림이 잦아들자 평온한 행복감이 밀려와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두려움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가 이런 낯선 상황에 놀라 나를 공포 상태로 몰아가지 않는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좌뇌의 언어 중추가 침묵하고 삶의 기억들이 저편으로 멀어지면서 편안한 감정이 찾아왔다... 마치 우주와 하나가 된듯했다."

 자신의 뇌가 죽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믿을 수 없지만 좌뇌가 개입하지 않으면 이러한 평온한 상태가 가능하다고 한다. 사람이 죽을 때 뇌의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뇌 활동이 갑자기 일어난다고 한다는데 아마 이런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주와 하나가 된다는 표현은 너무 종교적이다. 그래서 더욱더 이해하기 힘들지만 후에 말하기를 자신의 몸을 경계하는 좌뇌가 희미해지면 이런 현상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내 의식은 세타 빌 상태와 놀랄 정도로 흡사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불교도들이라면 아마도 열반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것이다. 좌뇌의 분석적 판단이 상실된 상태에서 평온과 안락, 충복과 행복, 충만의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깨달음'이라는 경지이다. 뇌의 특정 부분이 활동이 매우 미미하게만 작동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테일러는 좌뇌가 중지되었을 때 이러한 감정을 느꼈다고 말을 한다. 마치 깨달음에 관한 열쇠를 말해주는 문장 같다.

 

 

"세상을 탐험하게 해 주던 뇌의 활동이 사라지자 나는 고립된 순간에서 고립된 순간으로 떠돌고 있었다. 'A'와 'B'는 더 이상 관계가 없고, '하나' '둘'은 서로 무관한 존재였다. 둘 사이를 연결하려면 지성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내 마음은 더 이상 이를 수행하지 못했다."

 현실에 충실하라(Carpe diem)라는 말이 유행이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란 매우 어렵다. 좌뇌가 활동을 멈추면 우뇌에서는 현실만 존재한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현실에 충실한 것이다. 만약에 매 순간 매 순간에만 충실하다면 충만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테일러의 경험을 보니 끔찍한 것 같다. 순간순간에만 충실하다는 뜻은 미래와 과거가 없다는 것이다. 

 

 관계와 관련해서도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A와 B가 관련 없고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한 것은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표현이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열반이라는 경지에서 이를 느끼고 표현했다는 말은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인과 연이라는 불교용어가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며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은 없다는 말이다. 이를 테일러가 경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뇌졸중 경험으로 축복에 가까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누구든 언제라도 깊은 마음의 평화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열반과도 같은 경험이 우뇌의 의식 속에 존재하며, 언제라도 스스로 뇌의 그 부분에 접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신은 이미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다음과 같은 문장을 좋아한다. 우리가 가진 평화와 행복은 이미 우리 안에 내재되어있으며 그것을 꺼내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테일러가 얻은 깨달음은 일반인이 흔히 겪을 수 없는 일이다. 테일러가 이런 경험을 책이나 강연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전달해주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 줄 모른다. 그리고 테일러가 뇌졸중을 걸렸다고 깨달았을 때 꼭 이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얼마나 사려 깊은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테일러가 말했듯이 가능성이 우리 안에 있다고 나도 믿고 있다. 행복은 절대로 오는 것이 아니다. 찾아가는 것이다. 인생이 불행하다면 행복한 것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절대로 세상은 도와주지 않는다. 좌뇌를 죽이던 우뇌를 활성화시키던 테일러가 말한 경험에 의하면 우리 안에 내재된 행복을 꺼내서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한 시작은 일단 우리가 행복과 평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행복과 평화는 뇌에 이미 내재된 능력이다.

 

 

"첫째, 좌뇌 언어 중추의 활동이 감소해 뇌의 재잘거림이 멈추었다.

둘째, 좌뇌 상두 정이랑에 위치한 정위 연합 영역의 활동이 감소했다. 이 부위는 우리가 신체 경계를 확인하도록 돕는 것이다."

 신체 경계라는 말은 나의 발이 어디까지가 발이고 어디까지가 발이 아닌지를 구분하는 능력이다. 확장시켜서 나의 몸이 어디까지가 몸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의 불능은 경계를 사라지게 하고 마치 내가 세상과 통합된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경험 또한 깨달음을 얻은 선인들이 많이 표현한 바이기도 하다.

 

 종교에서는 다른 이와 나를 구별하지 말고 하나로 보라고 얘기한다. 통합적인 사고를 하라는 얘기다. 이를 테일러는 겪은 것이다. 진짜로 그러한 구별이 사라지게 생각할 수 있다면 통합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최근의 이런 연구 덕분에 좌뇌의 언어 중추가 침묵하고 왼쪽 정위 연합 영역이 정상적인 감각을 입력받지 못했을 때 내 의식이 바뀌어 몸을 고체가 아니라 유동체로 지각하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낀 것을 신경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위의 문장에서 표현한 것에 대한 결과에 대한 얘기이다. 우주와 하나가 된다. 허경영이 할 법한 말처럼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우뇌로만 바라보면 이러하다고 한다. 웃고 넘어갈 얘기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좌뇌로 판단을 내린 후에는 파일 업데이트를 위해서 선뜻 오른쪽으로(우뇌의 의식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판단을 한번 내리고 나면 그 결정을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이 많다. 우뇌는 살아있는 모든 개체들이 서로 통하는 것을 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믿고 지지하며 절대로 고집을 내려놓지 않는지 특히 요즘에는 특히 심해진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죽어도 밀고 나아간다. 그리고 극단주의에 빠진다. 물론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가 한몫하는 것도 있다. 그중에서 자기 합리화라는 방어기제가 특히 많이 자신의 의견을 더욱더 고집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건강한 자기 합리화가 아니다. 건강한 자기 합리화라는 것은 자신의 틀을 깨부수는 합리화이다. 어차피 나의 의견이 평생 가는 것도 아닌데 뭐...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어딨어라는 것과 같은 사고이다. 

 

 테일러가 말한 경험에서는 모든 개체들이 통합적이라고 표현을 한다. 사실 논리적으로 따져도 우리 우주는 통합적인 것이 맞기는 하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하지만 이를 항시 생각한다면 내 의견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 의견도 소중함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들은 곧 화해를 그리고 평화를 유도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이러한 사고는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

 

 테일러는 좌뇌의 불필요함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에서 좌뇌 덕분에 자신이 뇌과학자로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둘의 균형이다. 우리들은 한쪽 뇌로만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좌뇌가 강세라고 한다. 이는 기술이나 과학발전에 이로울 수는 있으나 행복이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좋다고 보지는 않는다. 문명이라는 게임이 있다.

자신이 가진 국가를 경영하는 일인데 그러한 발전 요소 가운데 행복도와 문화가 없으면 발전 속도가 매우 느려진다.

 

 우리나라의 행복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매년 보는 것 같다. 세상이 살만한 때는 문화와 행복이 기술과 균형을 맞출 때 가능한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는 것에는 수많은 시간과 세월이 걸린다. 아마 나의 인생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낫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