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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엘리에저 스턴버그)를 읽고나서..

SudekY 2020. 5. 20. 21:38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엘리에저 스턴버그)


 뇌과학에 관심이 많은 나는 예전부터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항상 검색하면 없던 책이 있었는데 오늘 독후감으로 작성할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이다.  작년 말에 출간한 책인데 책 번역이 19년에 완성된 것인지 아예 책 출간 자체가 그때 된 것인지는 모르나 한국에 나온지는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한밭도서관에 소장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서점에서 구매해버렸다. 책의 가격은 페이지 개수와 두께만큼 28000원이다.

뇌과학에 관심이 없다면 구매하기에는 비싸다고 느낄 수 있으나 소장한 도서관도 몇 군데 있는 것 같으니 대여할 수 있다면 대여해서 보길 추천한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독특한 제목 때문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뇌가 아니라 뇌가 바라보는 세계라는 뜻을 주며 세상 만물을 바라보는 이는 그 세계를 직접 창조했다는 뜻을 가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저번에 읽었던 책  '감정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감정을 창조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맥락과 비슷한 느낌도 받았다.

나도 이러한 세계를 창조하는 뇌에 대해서 동의하는데 왜냐하면 사물에 잣대란 것이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그러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예전부터 생각해왔고 철학책도 가끔씩 읽어보며 동의하게 되는 것 같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다. 나도 사실 느낌으로만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이제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소개하자면 이 책은 신체(뇌 제외)는 건강하나 뇌를 다치거나, 정신적으로 많이 아픈 사람들의 뇌의 분석을 통해서

우리가 현대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뇌에 대해서 블랙박스 방식으로 같이 풀어나가며 뇌의 비밀을 파해 친다.

여기서 블랙박스 방식이란 A라는 것을 블랙박스 안에 넣었을 때 B가 나오는 걸 확인하고 B라는 것을 블랙박스 안에 넣었을 때 A가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블랙박스에 들어가면 A가 B로 바뀌고 B가 A로 바뀌는 것을 유추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특정 대상의 기능을 파헤치는 것을 말한다.

이 책에서 블랙박스 안에 들어갈 것은 '뇌'이다.

책의 저자가 블랙박스 방식으로 유추를 해내는 방식을 택한 이유는 '뇌'라는 것은 알다시피 현대 과학으로도 정확히 풀 수 없고 블랙박스 방식이 우리가 뇌과학 분석을 하는 가장 근원적인 물음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과학이나 수학에 있어서 블랙박스 방식과 비-블랙박스 방식은 따로따로가 아닌 동시에 탐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재미를 본다고 하면 주제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1장의 큰 주제는 '시각장애인은 꿈속에서 무엇을 보는가?' 이어서 2장 '좀비도 차를 몰고 출퇴근할 수 있는가?, '상상만으로도 운동 실력이 좋아질 수 있는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기억할 수 있을까?', '왜 사람들은 외계인 납치설을 믿는가?', '조현병 환자에게 환청이 들리는 이유는?', '최면 살인은 가능한가?', '다중인격은 똑같은 안경을 공유하지 못한다?'

와 같이 정말 평소에는 별생각 없지만 막상 보고 나면 궁금해지는 주제들이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결정적 계기가 책의 주제 어그로(?)이다.

 

 하지만 저자는 어그로만 끌지 않는다. 그와 관련된 비슷한 주제의 환자들 또는 병들을 소개하면서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전개를 펼친다.

"이 주제에 의문을 가지기 전에 이러한 병들이 있는데 주제의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례들을 살펴보고 더 나아가 이러이러한 실험 주제가 있으니 이 주제의 결론은 이러이러하다"라는 식이다.

한마디로 정신을 놓는 순간 책을 앞에서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책의 시작 부분에서도 저자가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으며 나아가는 방식으로 책을 전개한다고 소개한다. 철학을 탐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많은 것을 얻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자가 문제의 정답을 얻기 위해서 다양한 곳을 넘나들며 여러 사례를 모으는 과정은 정말 존경받을만했다. 내가 존경까지 하는 이유는 나의 직업이 '개발자'로서 이러한 여러 사례들에 대한 탐구를 통해 정답을 얻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이 과정이 결론만 보면 단순하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에 매우 많은 노고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교과서에 나오는 간단한 공식이 알고 보면 역사 속에서 굉장한 피와 땀이 흘려진 끝에 나온 것처럼 말이다. 비유가 과장될 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이 과정은 정말 많이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또 나는 절대로 잣대를 매길 수는 없지만 과학 관련 책의 훌륭함을 논문의 참고 횟수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 또한 논문을 상당히 인용한 것이 책의 뒷부분의 페이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처럼 엉뚱한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인용되는 논문 개수만큼 정답을 찾기란 매우 어려우며 저자가 상당히 노력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책들을 많이 읽어봤는데 경험상 저자가 많이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또 깨달은 것이 있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흔한 정신병이 정말로 정신의 문제인가 뇌의 문제인가? 그렇다면 정신은 뇌의 어디 부분에 있는가? 정신은 자아에 있는가? 자아는 그러면 뇌에 어디 부분에 있는가? 자아란 무엇인가? 와 같은 끝없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아니지만 지나가는 말이지만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나에 대해서 더 나아가 나의 존재에 대해서 철학적까지는 아니어도 인생관을 다시 한번 다 잡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 있다면 정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신병의 대부분의 문제는 추상화된 정신보다 물리적인 뇌로서 접근할 때 더 많이 수식화되었고 그래서 더 가까이 문제에 다가가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라 똑같은 뇌가 배선만 달리 된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주 작은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생각보다 아픈 사람들은 우리랑 많이 다르지 않고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이 생각할 수도 우리 또한 배선이 바뀌면 그들처럼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편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약을 먹거나 수술하면 낫는다고 생각하면서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들은 왜 꼭  좋은 노래를 듣고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여행을 하라고 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더욱더 실질적인 접근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뇌과학이 더 발달하는 미래에는 정신병이나 트라우마를 레이저로 배선을 바꾸어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SF적인 망상까지 해보게 된다.


- 기억에 남는 문장 -

 

- 64 page -

"감각계는 생존에 맞게 설계되어 있다.

...

뇌는 최선을 다해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을 재건한다.

다른 감각들끼리 결합해 제 기능을 잃은 감각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부다."

 

 

- 76 page -

"꿈을 꿀 때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뇌는 뇌줄기가 활동 화면서 내보낸 무작위 신호를 수집하고,

이런 신호들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결합해 하나의 이야기를 엮어낸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머리는 잠을 자는 동안 터무니없는 판타지에 포위당하게 된다."

 

 

- 124 page -

"특정 행동을 충분히 훈련하면 뇌가 그 행동을 자동으로 수행한다는 사실은

연습이 중요한 이유에 대한 신경학적 근거를 제시해준다고 할 수 있다."

 

 

- 221 page -

"뇌의 무의식계는 나름의 논리를 따르는 단순한 시스템이다.

뇌는 양립 불가능한 자극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

이를테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이 분명한데 누군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

당장 갖고 있는 정보만으로 최선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뇌는 위가 보고 느끼는 것에서 핵심 특징만 골라내고, 깊은 곳에 있는 기억, 신념, 희망, 걱정거리 등을 스캔해

그 느낌의 패턴을 찾아낸다.

뇌는 그 느낌을 만족스럽게 설명하려 노력한다.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뇌는 우리의 인식에 통일된 이야기의 틀을 씌워 삶에 대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람과 자극이 맞아떨어지기만한다면 뇌는 죽음에 대한 경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 301 page -

"칵테일파티에서 다른 대화에 정신이 팔린 순간에도 자기 이름을 알아듣는 것은

신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무언가가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뇌는 감각 정보를 거의 모두 받아들이지만 의식적으로는 그 가운데 일부만 인식한다.

'인식하지 못하는'정보가 얼마나 많고 그것이 잠재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 314 page -

"이것은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지나치듯 흘낏 보낸 시선,

라디오에서 들은 노래의 가사 한 줄,

곁눈질로 바라본 포스터 등과 같이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해도

어떤 한순간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감각 수용체에 들어오는 어떤 것이든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그만큼 미묘하게 우리의 감정과 거기에 따르는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영향을 알아채지 못한다."

 

 

- 316 page -

"그렇다고 결과 전체가 달라질 정도로 커다란 영향은 아 닐 수 있다.

의식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잠재의식 메시지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최대치도 낮다.

볼링공의 경로를 구슬치기로 바꾸려는 시도와 비슷하다."

 

 

- 328 page -

"당신은 당신이 알아채지 못한 슈퍼마켓 계산원의 불쾌한 표정으로 인해

기분이 가라앉을 때에도 왜 기분이 축 처졌는지 나름의 해명을 만들려 할 수 있다.

직장 상황 때문일 거야.

날씨가 추워서일 거야.

당신은 진짜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끼워 맞추기 식의 해명을 만들어낸다."

 

 

- 333 page -

" 왜 무의식계는 완전한 서사를 유지하려 하는가?

왜 무의식계는 혼란스럽거나 모순된 경험을 억지로 이어 붙이는 해석을 만들어내는가?

이유는 우리의 자아의식을 지키기 위해서다."

 

 

- 377 page -

"그러면 무의식계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무의식계는 그런 이야기를 만든다.

무의식계는 단편으로 끊어진 경험 조각들을 끌어와 필요하면 빈틈을 메우고 우리의 인생사를 순서대로 배열한다.

무의식계는 자아의식을 구축한다.

또한 자아의식을 보호하고 유지하며, 심지어는 분열까지 이용해 나쁜 생각과 기억을 몰아낸다.

왜 그러는가? 정체성을 그토록 신성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화적 관점에서 말하면 자기 숙고를 하는 유기체일수록 생존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정체성을 파악할 때 자신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고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 379 page -

"과학의 역사에서는 블랙박스 취급을 하며 미스터리라고 선포하는 것들이 종종 있다.

연구자들이 알맞은 연구 틀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올바른 질문을 해야 한다.

발견으로 향하는 길은 무엇을 찾아보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

뇌 연구가 발전할수록 블랙박스를 파헤치는 여정도 계속되어야 한다.

집단 아이디어를 충분히 활용해 사고와 행동 패턴이 신경과학 메커니즘에 꼭 맞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증거는 거기에 있다.

이제 빈틈을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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