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터틀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를 읽고나서.. 본문

Humanities/book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를 읽고나서..

SudekY 2019. 6. 29. 18:34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프롤로그에 써있기를 

"그러므로 여기서 내가 하고 있는 이야기가 특정 주제에 관한 최종 결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주길 바란다. 결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머리말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머리말은 풍부한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셸리 케이건(저자)는 결말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철학적으로 죽음에 관한 다양한 질문과 여러 의견에 접근하여 이런것이 있다고 알려준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나는 죽음에 앞서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한것이 가장 최근에 한 생각이다.

죽는 순간 의미로 가득찬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후회보다는 뿌듯함을 느끼고 싶다는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들 자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수있었다. 지금은 후회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고 뿌듯함으로 죽음을 맞이하는삶이 정말 좋은 삶인가? 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책의 난이도는 높지 않다. 철학책이라고 해서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차근차근 읽다보면 어려운것은 하나도 없다. 프롤로그에도 읽기 쉽지는 않는책이라고는 써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난이도가 높지는 않다. 관심있는 주제라서 재미있게 읽은것도 영향이 있을수도 있다.

 

 해당 책은 영혼, 귀신, 유신론자들이 읽기에는 다소 불편함을 느낄수있다. 셸리 케이건은 이런것들을 믿는사람들에 관한 다양한 의견, 근거, 철학적인 얘기도 많이하고 절대 무시하지 않고 다만 믿지 않는다고 말하기에 불편할것은 없지만 책을 읽으며 따라가다보면 철학적으로 나오는 결론이나 의견이 신이나 영혼의 믿음에 있어서 납득하기 힘들수도 있는 의문이 많이 들수도 있기에 불편할수도 있다는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것에 대한 의문자체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물리주의를 옹호하지는 않지만 이 책은 물리주의쪽으로 설명이 많이 되어있다. 참고하기 바란다.

 

 책에 초반부에는 영혼에 관하여 나오고 셸리 케이건이 영혼을 믿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셸리케이건은 납득할만한 타당한 근거나 결론이 나지 않기에 영혼을 안믿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소위 '철학적' 관점에서 볼때 임사체험에 관한 주장을 무시하려는 태도는 잘못된것이라고 생각한다"

셸리케이건은 항상 철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을 믿지 않는다고 기분 나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해하진 말자.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장담할수는 없다"

나는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부분을 읽고서 논리가 항상 옳다고 답이 되지는 않는다는것을 깨달았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것을 증명하기위해 근거를 제시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 주장하기 위해 우리는 뭘해야할까? 용이 존재한다고 하는 모든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면 될것이다"

"뭔가를 믿지 않는다고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야 할 의무는없다"

의무에 관한 내용이 인상깊었다. 왜 우리가 의무를 가지고 근거를 제시해야하는가?

 

"셸리케이건은 여기서 '유니콘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주장들 모두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있지 않기 때문이다'에 이어서 그렇기 때문에 '이런 차원에서 나는 물리주의의 관점을 취하는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물리주의의 관점이 타당하다고 가정하고있다"

"'물리주의자' 들 처럼 인간을 육체적 존재로 바라볼때에 죽음에 대해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수있는지를 이해하는것은, 단순함 호기심을 넘어 중요한 사실을 여러분이 깨닫는것이다"

셸리케이건은 물리주의가 타당하다고 가정하고 있고 유니콘이 존재한다는 주장들이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물리주의를 취한다고 말한다.

물리주의적 관점을 취할때 얻는것은 호기심을 넘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는것이 이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가 아닐까싶다. 

 

"하지만 매일, 매시간, 매분 '나'라는 존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지 확인할방법이 없다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없다"

어젯밤에 나와 자고일어난후의 나가 동일한 사람인지를 어떻게 확인할수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보니까 소름이 돋았다. 내가 나인것을 인식하는것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뇌에 어떤 부분이 작용해서 내가 나인것을 깨닫게 해줄까? 어제의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닐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고민하지 않고 바로 알수 있을까? 조금더 깊게 생각해봐야 되는주제지만 여하튼 이런 의문점이 든다는것에서 해당 문장이 감명깊에 남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믿음, 욕망, 목표는 거의 없다. 그래도 올바른 형태의 중복 및 연속의 패턴이 이어지는한, 우리는 동일한 인격을 유지할수있다"

바로 위의 나의 의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니지만 우리가 우리라는 인격을 유지하는것은 중복 및 연속의 패턴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우리는 그가 진짜로 나폴레옹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그가 가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나폴레옹의 '육체'를 갖고있지 않기 때문일것이다. 이는 바로 육체관점 옹호자들의 주장이기도하다. 나폴레옹과 정말로 흡사한 인격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진짜 나폴레옹이라고 부르기 위해 나폴레옹의 몸도 필요하다"

한 사람이 하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격과 동시에 육체도 필요하다. 그리고 유일한 사람이여야된다.

 

"지난주 책을 쓰고 있었던 사람과 지금의 내가 동일인물인지에 대한 문제는 미시건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보인다. 직관적으로 볼때 내가 과거의 나와 동일한 인물인지에 관한 문제는 오로지 지난주에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관계에대한 사실에만 달려있다"

나의 의문에 대한 약간의 정리가 아닐까 싶다. 여하튼 관계가 있기에 내가 나임을 인식할수 있는것임은 틀림없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가 바라는것은 생존 그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진화하는 동일한 인격도 아니다. 요컨대 내가 원하는건 지금 나와 '비슷한' 인격을 유지하면서 생존하는것이다"

영생을 하는것에 관해서 나온 말이다. 영생을 한들 나와 비슷한 인격이 아니라면 무슨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질문은 '생존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가 아니라, '정말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가 돼야 할것이다.

죽음에 앞서 인생에 있어서 생존하는것보다 어떤 가치가 중요한것임을 따지는것은 왜 생존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변이 될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나는 그런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고나서 내 몸이 부활하거나 내 인격이 이식될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이 나의 진정한 종말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나의 끝이자 내 인격의 끝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다.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것의 끝이다."

죽음에 대한 핵심이다. 죽음은 슬픔도 존재도 영혼도 믿음 그 이상 생각할수도 있는것도 아닌 무(無)다.

시작이 있기전 상태를 죽음이라고 할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죽음을 상상하기 어렵다면 태어나기전을 생각해보면 될것이다. 무언가 보이는게 있나?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인식과 존재조차 느낄수없다. 그런 상태로 다시 가는것이 죽음이다.

 

"설명할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여러분이 죽었다면 그것으로부터 상상할만한것은 아무것도 없다"

상상은 존재해야 가능하지만 죽음은 비존재이므로 상상할수없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죽음 그 자체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죽음이다.

 

"에피쿠로스 曰 그러므로 가장 끔찍한 불행인 죽음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존재하고있는 한 죽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를 찾아왔을때 우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든 이미 죽었든간에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살아있을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정말 이렇게 단순해질수 있다면 우리는 죽음에 관해서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을텐데 인간의 뇌라는게 그렇지않다.

 

"죽음이 나쁜 이유는, 죽고나면 삶이 가져다주는 모든 축복을 더 이상 누릴수 없어서다. 살아 있을때 삶이 가져다주는 선물을 하나도 누릴수없기 때문에 죽음은 우리에게 나쁜것이다. 이것 말고는 어떤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 생각에 동의한다. 우리가 죽음이 나쁘다고 생각하는것은 죽음이 일어나면 지금 할수있는것들을 더 이상 할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를 더 이상 볼수 없다는것으로도 죽음이 나쁘다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흑백논리로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것이다. 즉, 절대적인 차원에서 더 좋은 또는 더 나쁜 삶이 있을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먼저 해야할일은 세밀한 평가 작업을 위한 정당한 기준을 세우는것이다"

나쁜것과 좋은것에 대한 기준을 세밀하게 보는것은 중요하다. 무엇이 가치있는것일까? 즐거움이 전부일까?

 

"어떤이들은 안타깝게도 불구가 되어 움직일 수 없고 아무런 희망없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삶을 버텨내야만 한다. 그들에게 삶은 하나도 좋을게 없다. 비록 무척 드물고 특수한 경우라고는 해도, 이런사람들에게 죽음은 절대로 일찍 찾아오지 않는다(심리적인측면에서), 때로는 너무나 굼뜨게 느릿느릿 기어서 온다."

죽음이 무서운이유가 사라지고 죽음이 오는것을 바라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삶의 가치가 무엇에 있는지 더 정확히 파악할수 있지 않을까?

 

"spinoza 曰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감정적 거리감을 유지할수 있다"

셸리 케이건은 이 책에서 불교에대한 굉장한 존경심을 표한다고 말하는데 나도 동일하다고 생각하는것이 불교는 인과연으로 삶의 모든것들은 필연적인것이라는 믿음(?), 진리(?)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내가 죽는것이 필연적인것 이라면 죽는것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할수없을것이다. 우리는 운명을 바꿀수 없다는 사실을 알때 숙연해진다.

 

"'세상에 우리처럼 운 좋은 사람이 또 있을까?' 어쨋든 우리 모두는 엄청난 확률을 뚫고 세상에 태어난 행운아들이다"

확률로 따지다면 매우 엉청나게 낮은 숫자임에도 태어났다는 사실은 삶이 소중한 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가져야할 바람직한 감정은 두려움도 분노도 아니다. 대신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일뿐이다. 물론 분노와 마찬가지로 감사또한 특정 인격체를 대상으로 해야하는것 이라면, 그리고 비인격적인 우주를 인정한다면 감사또한 적절한 감정은 아닐것이다. 다행정도가 적절한것이다"

안도감이 그나마 나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신중하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죽을운명이기 때문은아니다. 객관적인 차원에서 짧은 시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도아니다. 그것은 추구할만한 가치 있는 목표가 매우 '많이'있고, 그런목표들을 달성하는게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에 비해 우리의 수명이 너무 짧다는 사실이다"

영생은 너무 그렇고 자신이 죽고 싶을때 죽을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인생은 없을것이다. 세상에 모든것을 하고 이제는 더이상 하고싶지 않고 삶을 마무리하고싶을때 죽는것이 가장 좋은것이 아닐까싶다. 그렇지만 우리의 수명은 한계가 있기에 죽음을 받아들이기란 어려운것이 아닌가 싶다. 

 

"자아의 관점에서 죽음은 두려운것이다. 하지만 자아가 없다면 두려울것도 없다. 고백컨대 나는 불교에 깊은 존경심을 갖고있다. 삶이 고통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일때 우리는 모든것을 설명할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불교를 존경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자아는 타인으로부터 생기는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자아란 없다. 내가 있어서 너가 있는것이다. 내가 없으면 너라는 단어를 쓸수없다. 그렇다면 본래는 무엇일까? 본래는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불교에서는 삶을 고통이라고 본다. 삶이 시작되는것 자체가 고통이기때문에 죽는것은 나쁜것이 아닐수도 있다.

 

"자살의 '합리성'에 초점을 맞출때 우리는 특정한 상황에서 자살을 정당화 할수있다. 보다 정확히 말해 개인의 이익이라고 하는 합리적 관점에서 판단한다면 특정한 상황에서 자살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론적으로 말해 자살은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나는 자살에 대해서 항상 부정적인 입장만 취했었는데 자살부분쪽을 읽고나서는 자살이 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올바를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셸리케이건도 이에 대해서 자살을 하는이가 정말로 합리적이고 합당한 이유를 가질경우에만 그러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살을 택하는 많은 이들이 감정적이고 이성적으로 매우 불안하기 때문에 자살이라는것이 합당하지 않을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도덕성과 관련해 결과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것은 공리주의(utilitarianism)를 꼽을 수 있다. 공리주의는 모든 이들의 행복을 평등하게 놓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행복을 가져다주었는지를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하는 도덕 이론이다."

공리주의에 대한 개념이 그냥 궁금해서... 공리주의는 정답이 아닐수도 있는 예시들도 나온다.

 

"공리주의 관점을 받아들이든 의무론적 대안을 받아들이든간에,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수있다. 자살은 항상은 아니지만 '때로는' 도덕적으로 적절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자살이라는것이 도덕적으로 적절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은 나에게 충격적이였다. 나는 항상 자살에 대해 안좋은 입장을 취했는데 이와 반대의 생각과 결론이 있을수도 있다는 사실은 뜻밖이였다.

 

"정말로 중요한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한다. 죽음은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여러방면으로 생각을 해볼수 있는 책에 마지막 말이다.

 

 이 책을 읽고선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다보니 죽음이 생각보다 별거 아닐수도 생각하면 할수록 심오한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셸리케이건처럼 죽음이 삶의 끝이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이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는 죽음속 앞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유일하게 의미를 만드는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쓸데없는 짓을 하였어도 우리는 그 일에대해서 어떤 의미도 부여할수있다. 이 부분이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싶다.

나는 이 장점을 죽음에 있어서도 부여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에서는 죽음에 대한 여러의미의 해석을 전부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나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철학적으로 비합리적일수도 있다고 생각할수 있다.

물론 나는 영혼이나 신을 믿지는 않지만 철학적으로 비합리적이라고 하는 사실이 우리의 믿음이 꼭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부분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셸리케이건이 죽음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할수 없는 이유는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점을 알고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혼이 있던 신이 있던 죽음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것이라고 인간의 뇌가 철학적으로 결론이 내렸던 그런 사실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성찰 또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꼭 필요한 부분이기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죽음은 죽음 외에 아무것도없다. 나는 의미를 부여할수 있는 동물이다. 죽음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의미를 부여할수 없는것은 아니다. 나름의 의미를 찾자.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네이버를 켯을때 실시간검색어에는 배우 '전미선'의 자살소식이 올라와있었다.

배우 전미선에게는 자살이라는 선택이 현재의 고통을 지속하는것보다 나은 선택이였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그냥 나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을텐데 생각의 변화가 왔다.

다만 전미선씨의 자살이 도덕적으로 타당한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따져봐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미선씨는 우울증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우울증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자살이 합리적이고 타당한지 정말 면밀히 검토하고 결론을 내렸을지는 의심이 간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까운것이 아닐까싶다. 왜냐하면 우울증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녀의 앞 인생을 우리가 내다볼수 있고 앞에 인생이 지속적으로 고통스러운 삶이였다면은 자살이 타당했을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보는 기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앞의 인생이 계속 상승해서 행복한 여생을 보냈을수도 모르는법이다.

그리고 그녀가 정말 이성과 논리와 철학적으로 판단하여 자살이 옳은 결정이였다고 하였다면 나는 그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인정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해서 나의 감정이 응하는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명인 한명의 자살은 여러명의 자살을 유도한다는 얘기가 있다. 과학적으로 정확히 입증된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미미한 영향이라도 미쳤을경우 그녀의 자살은 타당한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안타깝다. 앞으로 자살할 사람들을 부추겼다는 점이 안타까운점이 아니고 다양한 이유들이 자살이 타당하지 않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배우 전미선씨의 명복을 빈다. 사실 죽음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녀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다는 점에서 좋은 죽음을 맞이 했을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책을 읽고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바뀐다는데 이런점이 아닐까싶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인생을 방황할때 보면 좋은책같다. 무엇을 깨닫는것이 아닌 죽음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본다는점에서 매우 좋은 책이 아닐까싶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