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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마시모 피글리우치)를 읽고나서..

SudekY 2019. 7. 9. 11:25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마시모 피글리우치)

 나의 인생에 기준이 되어준 책이자 내 기준으로 기독교나 천주교인이 가슴에 항상 지니고 다니는 성경책과 같다.

내가 항상 철학에 고민을 하던 중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과 정말 알맞은 철학을 소개해준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교보문고 인터넷에 포인트랑 쿠폰들이 여러 개 있어서 서점에 가서 무엇을 살까 1시간을 넘게 굉장히 고민하다가 막상 인문/철학 베스트 쪽에 있길래 딱 고른 책인데 이 책을 선택했다는 점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다.

행운이라면 방황하는 나의 철학에 있어서 기준이 되어주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 가능했다.

 

 스토아주의는 내가 이과를 나오고 공대를 나왔어도 그냥 얼핏 듣던 건데 최근 들어 인문소양을 키우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하고 관심을 가지면서 지나가면서 몇 번 들었던 단어이다.

금욕과 관련되어있다는 것이 키워드였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인문 쪽에서 배우는 스토아주의는 굉장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선 스토아주의는 덕을 강조하며 실천을 강조한다. 나는 덕보다 실천이 마음에 들었다.

 

 이상 감명 깊은 문장들을 소개하며 책을 정리해보자.

 

"나는 현재 불교의 주류 양상들이 지나치게 신비적이며 특히 우리가 현대 과학을 통해 세계와 인간 조건에 대해 알고 있는 바에 비추어볼 때 불교의 경전들은 불투명하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불교를 잘 모르기 때문에 동경하지 않는다고 책의 마지막에 얘기하는데 하지만 스토아주의는 이미 불교와 비슷한 면이 많다는 것을 그나마 불교 쪽에 가까웠던 내가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저자 말대로 불교는 너무 해석이 어렵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다가가기 어렵고 오히려 오해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불교도 학파가 나뉜다는 걸 들은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스토아주의는 이성의 힘으로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명명백백한 단순한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성의 힘으로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하지만 이성의 힘으로 자연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부분이 꼭 과학적이거나 수학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뿐 아니라 윤리적인 부분도 포함하는 것이다.

 

"내가 스토아 주의자로 돌아선 마지막 이유는 이 철학이 죽음의 불가피성과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에 관해 가장 직접적이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사실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아직 모르겠다. 책을 다시 한번 나중에 참고할 것인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이성의 힘으로 죽음의 과정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 덕이라고 하는 것 같다.

 

"목표는 이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책을 다 읽으면 마지막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배운다. 힌트는 덕이다.

 

"반드시 수련해야 하는 세 가지 분리 

1. 자기가 취하고자 의지하는 법을 취하는데 실패하지 않고 자기가 피하고자 의지하는 바에 빠져들지 않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2. 규칙에 맞게, 신중히 숙고하고 적절한 주의를 기울여 행동해야 한다.

3. 목표는 우리가 기만당하지 않아야 하며 임의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승인과 관련된 것이다."

의지, 규칙, 흔들리지 않음이 중요하다. 이런 것들은 전부 이성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이성이 전부다. 감정을 배제한 이성으로 감정을 포함하여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이성이다.

 

"이것은 결국 어떤 일은 우리의 능력 안에 있고 어떤 일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로부터 도출된다. 우리는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 결정적인 차이를 헤아릴 수 있다."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본 것이다. 통제의 이분법? 이였나 스토아주의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인데(개인적으로)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부분은 신경 끄고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서만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은 굉장한 시간낭비이며 비 이 성적이 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결과 또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우리의 노력에 비해 운 적인 요소도 많기에 연연하지 말라고 한다. 다만 내가 통제 가능한 부분에서만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노력할 뿐이다.

 

"에픽테토스의 결정적인 요점 중 하나는 우리에게 이상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정확히 그런 것들을 걱정하고 거기에 에너지를 집중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을 이상한 경향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보았을 때 이상하다는 것이다. 어떤 이가 움직이지 않는 돌에 왜 움직이지 않냐고 화를 내며 네가 움직일 때까지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고 이상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나는 실제 결과와는 전혀 무관하게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안다는데서 만족을 얻는다."

결과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기에 통제할 수 있는 '최선'에 다해서만 만족을 얻는 것이 행복인 것 같다.

 

"에픽테토스는 후회야말로 자신의 감정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도 이 말에 동감하는 것이 후회하는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이유가 교훈을 얻기 위해서 보다는 부정적 감정에 흐르고 싶은 욕구 때문에 과거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후회는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쓸데없는 짓이다.

이 성적이 아니고 감정적으로 봐도 후회하면 뭐한다는 것은 너무나 쉽게 직감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를 살지 과거에 살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후회 말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자.

 

"평온의 기도가 말하는 것처럼, 그 차이를 깨닫는 것이 성숙하고 현명한 인간의 징조이다."

통제의 이분법

 

"그리고 스토아 주의자들이 인간 예외주의를 주장하는 근거로 고수하는 것이 바로 정확히 이 두 가지의 인간적 측면들, 즉 사회성과 이성이다." 

"에픽테토스는 내게 인간의 근본적인 측면은 우리가 사회적인 존재라는 점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단지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우리가 존재할 수 없다는데서 더 깊은 의미에서 그렇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우리가 국가에 이익이 되는 일들을 할 때 실제로는(아마도 간접적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혜택을 주는 셈이라는 것이다."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이성이 부족하다면 다른 쪽으로 인간으로서 당신을 표현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 있는가?

사랑? 동물도 사랑을 한다. 그리고 사랑도 이성의 한 부분이다.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내 소임은 실제로 드러난 일들을 성실하게 재주껏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여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바로 그대의 일입니다."

통제할 수 있는 부분만 최대한 활용하여서 나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 인일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스토아의 윤리란 그냥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우리의 행위)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더 광범위하게 우리가 현실의 삶을 헤쳐 나가기 위해 어떤 품성을 갖추어야 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품성이라는 말이 나는 아직 어렵다. 사회성이  남에게 다고 했으니 보이는 나를 말하는 '품성'일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에 느끼는 '품성'이라는 것 일까

 

"신무신론자들이야말로 다양한 근본주의자 우리들이 자기네 예배에 누구를 허용할 것인지에 관해 배타적인 만큼이나 자기네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고를 때 배타적인 사람들이지 않는가."

나는 이 책을 통해 '신무 신론'을 처음 듣는데 너무 배타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동의는 한다. 나는 무신론인데 요즘 무신론자들을 보면 정말 배타적인 것이 '신'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격분하면서 유신론 자라며 무시한다. 이것은 유신론자들이 '신은 없다'라는 말을 들을 때 말한 이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해서 무신론자들이 부들부들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것은 논리와 물리에 빠져서 윤리를 잃어버린 현상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덕이란 전부다가 아니면 하나도 못 가져가는 묶음상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스토아 철학이 벅차지 않다고 말한 적이 없다."

덕이라는 것은 힘들다. 쉽지 않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덕이 없다면 길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 자신의 행동, 편의를 위해 원칙을 타협하는 우리의 너무도 잦은 무신경한 성향, 꼭 필요할 때에 부족한 우리의 용기, 대개는 이론적인 차원에 그치고 마는 우리의 정의감, 종종 허영에 휘둘리는 자제력 그리고 인생이 우리에게 툭 내던진 일들을 처리할 때 심한 한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우리의 지혜에 대해서 말이다."

지혜라는 것은 타협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맞추어서 계속 변화하고 자신의 이득에 맞게 타협하는 것 그리고 실천하지 못하는 지혜는 지혜가 아니다.

 

"원래 소크라테스에서 나온 개념이다. 사람들은 고의로 '악'을 행하지 않으며 다만 '무지'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누군가는 격분할 것이다. ~~~~ 그러나 철학의 많은 용어들이 그렇듯, 여기서 '악'과 '무지'는 우리가 기대한 바로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니다."

악이란 무엇이고 정의란 무엇일까?

 

"왜냐하면 메데이아는 어떤 의미로 보나 '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절름발이처럼 무언가 중요한 것을 결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메데이아는 지혜를 결여하고 아마티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런 일종의 지식 거부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특정 상황에서 불합리한 판단을 내리게 되고 그 바람에 외부인들이 마땅히 끔찍한 행위로 인식하게 될 일들을 벌이게 된다. 만약 우리가 이런 스토아의 태도나 이에 상응하는 불교나 기독교의 똑같은 태도를 내면화한다면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분개할 일은 없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내용이다. 지혜를 결여했기 때문에 분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정말 냉청한 이성으로 이루어낸 성찰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마티아(지혜를 거부하고 찾지 않는 것)로서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분개할 일이 없다. 정말 이 책에서 이것 하나로 나는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인지부조화란 어떤 이가 자신이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두 판단을 사이에 갈등이 있음을 자각할 때 발생하는 매우 불편한 심리이다. 이것은 에픽테토스가 사람들은 알면서 저지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던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인지부조화라는 것은 알고 있던 개념인데 사실 그렇게 하지 않기가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조금씩이라도 고쳐야 더 냉철한 이성에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남들이 인지부조화를 한다한들 분개하지 말자. 아마티 아니까

 

"의도적으로 그들의 인지부조화를 증폭시킴으로써 너무도 불편한 지경에 이른 그들이 스스로 더 많은 정보와 새로운 전거( 전거 : 말이나 문장의 근거가 되는 문헌상의 출처 )들을 찾아내 그 갈등을 해소하게끔 하는 것이다."

인지부조화에 빠진 사람은 옆에서 그냥 아주 조금씩 혼란된 정보를 주는 것이다. 그들의 감정을 스스로 불편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해결하게끔 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리의 말이나 행동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영향을 미칠 수도 못 미칠 수도 바뀔 수도 안 바뀔 수도 있다.

 

"우리 나머지 사람들에 관한 한 사람들이 지혜의 결여 때문에 나쁜 짓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은 타인을 향한 자비심을 상기시켜줄 뿐만 아니라 지혜의 계발이 정말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늘 일깨워주는 역할까지 같이 해 줄 것이다."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는 것은 합당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들을 가두어야만 범죄를 더 이상 못 저지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들을 가두는 것은 합당하다. 왜냐하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지혜의 결여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서 왜 그러한 지혜의 결여를 겪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부분만 하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의 결여라는 생각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잘못된 사상을 전파하는 이에게 동정심을 생기게 하고 자비심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이러한 결론에 다다른 것 자체가 이성의 논리로 감성을 건드리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승리하리라 신념을 갖는 일과(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는 거지요) 눈앞의 현실에서 펼쳐지는 가장 폭력적인 사실들(그게 무엇이든 말이에요)에 맞설 수 있는 힘을 다지는 것을 결코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신념도 중요하지만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실천가 능한 힘을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역할 모델들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것은 나 자신의 덕을 함양하는 한 가지 강력한 방법이다."

역할 모델을 설정해야겠다. 우선 나는 이 책을 읽고 에픽테토스로 정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매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용기를, 약간이라도 더 예리한 정의감을, 더 많은 절제를, 그리고 더 많은 지혜를 발휘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 좋아질지 한번 상상해보자."

이상적으로는 얼마나 좋아질지 상상하면 세상이 평화로 가득해질 것 같다. 조금씩이지만 모이면 커지는 법이니까

 

"너 자신을 알라. 자기 신체 능력과 정신능력을 아는 일은 곧 자신의 한계를 아는 일을 포함한다. 자기 능력에 관한 무지와 그보다 더 나쁜 자기기만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메타인지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 같다. 나도 최근에 다시 메타인지라는 개념에 가지게 된 것이 내가 나를 보니 나를 고치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모르는 것보다 바뀌기 쉬웠기 때문이다. 나는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나도 포함시킨다.

생각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바꾸기 힘들다. 무의식적인 성격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은 통제 불가능하다. 나는 그냥 통제 가능한 생각을 넓혀서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 철학(스토익)이 인생의 곤경을 일종의 훈련장소로 사용할 것을 강조 ~~~ 두 번째 측면은 부정적 지각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모든 주요 스토아 주의자들은 우리가 자신의 상태를 반성하고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자 진정을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훈련장소로 쓴다는 것은 자신의 지혜를 늘리는 게임과 같은 생각이라는 것이고, 부정적인 지각화는 항상 부정적인 것을 지각해서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항상 어떤 것이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해당하는 것이 사실 별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것이든 부정적인 면이 있고 긍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면에 더 크게 느끼기 때문에 부정적 지각화를 하고 여러 면을 볼 수 있다면 긍정은 못되더라도 평정은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도 역시 침착한 이성의 확신에 찬 목소리다. 이번에도 역시 자신의 자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더 폭넓은 전망을 취하라는 요청이다. ~~~ 이 찰나의 시간이 언젠가 종료되리라는 전망 때문에 낙담하는 것은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전혀 유익하지 않는 태도다."

폭넓은 전망(관점)을 취하는 법은 무엇일까? 아마 계속 생각하고 경험하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책을 읽거나 여타 다른 책도 읽으면서 나의 생각에 항상 다양한 관점을 주입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허무주의로 가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고 한다.

 

"나는 그가 곡기를 끊고 3일째 되는 날에 그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찾아가서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에 그런 건지 물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내가 결정한 것이요' 알겠소 하지만 그건 그럼 다쳐도 당신을 그러라고 설득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해보시오. 왜냐하면 당신의 결정이 옳다면 지금 우리는 당신 곁에서 당신이 이 삶을 떠날 수 있도록 도울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오. 하지만 만약 당신의 결정이 이성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마음을 바꾸세요"

최근에 읽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자살을 하는 이 가 자신의 고통이 남은 삶의 행복에 대비해서 매우 높다면 자살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한다라는 것을 봤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삶이 계속 -(마이너스)라면 누가 살고 싶을까. 하지만 여기서 자살을 할 때 이러한 합당한 이성으로 나온 결론이라면 그 또한 자살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성이 우리 모두를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자살을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살은 이성보다 감정에 흔들려 일어난다.

 

"그리고 현대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상황을 고쳐서 인식하는 일은 분노와 정서의 관리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구성 요인이다."

현대 심리학은 많이 발달해있고 이 말을 믿어도 된다. 관점을 넓히는 것은 감정조절에 굉장한 힘을 준다.

 

"논리가 분노를 이기는 법이다. 정당한 분노조차도 금방 불합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스로의 차갑고 무심한 논리에 따르라."

말이 쉽다. 논리로 감정을 이기려면 10번을 전투에서 9번은 이겨야 승산이 있다. 왜냐면 2~3번 지면 이미 초토화될 만큼 감정은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감정의 씨앗이 피어오를 때 제거해야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감정이 격분해질 경우 잠재우기란 쉽지 않기 때문인 것을 이미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면 부처는 대단하다.

 

"그는 예를 들면 분노가 일반적으로 아주 합리적인 것이 아니듯 불안도 마찬가지이며 실은 두 감정 모두 우리의 인생계획과 우리 삶의 질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것들임을 지적했었다."

분노랑 불안증에 나는 불안이 더욱더 비합리적인 것 같다. 불안을 증식시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비 이성적인 결과물이고 나쁜 결과물이다. 불안할 때 오히려 대책을 세울 경우 우리는 더욱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생계획을 세울 때에는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외로움은] 본래적인 인간 정신의 일부이므로, 수수께끼 풀듯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로지 완화될 수 있을 뿐이며 덜 고통스럽게 해 줄 수 있을 뿐이다."

외로운 사람은 무리에 있어도 외롭고 연인을 사귀어도 외롭다. 외로움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능적이다. 그러니까 이 부분을 인정하면 덜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외로움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 외로움은 친구를 만나 위로받을 수도 있고 명상을 하면 현재의 집중해서 잊을 수도 있다. 외로움이 느껴진다면 외로움이 항상 있었는데 왜 지금 더 느껴졌는지를 파악하면 된다.

 

"우리는 혼자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무력감을 느껴야 할 필요는 없다."

외로움에게 져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외로움은 니 뇌가 만든 것이다. 뇌는 누구 껏인가 네 거다.

 

"우리는 자신의 논증들을 적용하고 그것들을 행동으로 증언해줄 사람을 원합니다."

내가 스토아주의를 좋아하는 이유다. 스토아주의는 실천을 중요시 여긴다. 나는 이러한 실천에 앞서 논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논증만 알고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수학계 산은 뭐하리 그리 열심히 하나?

 

"의미상으로 풍부한 언어란 뉘앙스가 더 많이 실린 사유 그리고 삶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더 나은 능력을 반영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가 풍부한 의미가 들어간 것을 알면은 삶의 난관에 있어서 더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인생의 크고 작은 모든 사건과 상황에 반사적으로 적용하며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실천에 옮길 수 없는 철학과 사건의 크기에 따라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꼭 실용적이 여야 한다.

제일 중요하다. 내가 배운 것을 실생활에서 아무것도 실천할 수 없다면 의미 있는 것을 배우고도 의미 없는 짓을 했다고 볼 수 있다.

 

"1. 덕이 최고의 선이며 다른 모든 것은 하찮다.

 - 우리가 건강, 재산, 교육 같은 항목들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것

2. 본성을 따르라.

 - 이성을 모든 사회생활에 적용하라.

3. 통제의 이분법

 - 어떤 일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고 또 어떤 일들은 그렇지 않다.

덕의 4가지

- (실천적) 지혜 - 활용 가능한 최선의 방법

- 용기 - 모든 상황에서 도덕, 육체적으로 올바른 일을 하기

- 정의 - 모든 인간을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우하기

- 절제 - 겸손과 자제력

 

1. 당신의 인상들을 검사해라

 - 인상 = 우리가 듣는 말, 보는 것에 대한 우리의 첫인상을 성찰

"행위 주체들에게는 논리적으로나 혹은 이론적으로나 혹은 실천적으로 불가능한 어떤 일을 하려는 직접적인 시도를 하지 말 것이 요구된다"

2. 사물의 덧없음을 상기해라

 - 그러니까 아주 많이 관심을 갖고 고마워해라.

3. 보류 조항을 명심해라.

 '운명의 여신이 허락하는 한', '우리가 소원하는 대로 그렇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경우에서조차 우리가 지대한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혜를 잘 활용하라'

4. 지금 여기서 덕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늘 유념하라.

 모든 도전에 대해서, 그대가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 그대 안에 보유한 자원을 기억하세요. 잘생긴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자극을 받을 때는 극기라는 정반대의 힘을 발견한다

아파테이아(apatheia)는 마음의 평정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말을 또한 삶이 우리에게 내던지는 것을 향한 체념을 의미하기도 한다.

5. 잠깐 멈춰서 숨을 깊게 들이마셔라.

 만약 누군가가 그대를 도발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그대의 마음이 그런 도발의 공모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6. 타자화하라.(他者)

 누구든 자신을 우주와 특별히 아끼는 존재, 그렇게 대접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타인의 불행에 대한 나 자신의 반응을 바로잡고 내가 생긴 문제들이 더 많은 인류가 흔히 겪는 일임을 기억함으로써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이 꾸준한 습관이 내 생각에는 사물들을 점점 더 평정심을 갖고 바라보게 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7. 말은 조금만 하되 제대로 하라.

 자신을 변호가기 위해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험담하고 판단하는 일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전혀 덕스러운 일로 보이지 않는다.

'검투사'등등의 대화에 대한 반응을 차차 줄여보고 대신에 기회가 될 때마다 최근에 읽거나 본 것을 토대로 한 주제나,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면 서로에게 유익한 대화로 이어질 수 있겠다 싶은 자신만의 도전적인 주제를 소개해주라.

8. 친구를 잘 골라라.

 최소한 우리는 내 친구들이 내 영혼을 비춰줄 거울을 들고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기를 원한다. 그래야 우리가 그 거울을 진솔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그것을 위해(거울이 아니라 거기에 비친 영혼) 얼마나 더 많이 노력해야 할지 더 잘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9. 모욕에는 유머로 승부하라.

 누군가의 모욕으로 상처 받는 대신에(기억하라 저들이 하는 말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비하로 응수하라. 그러면 내 기분은 더 나아질 것이고, 비방자는 당황하거나 적어도 무장해제될 것이다.

우리는 지혜를 실천함으로써 모욕과 비판을 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모욕의 순간이라 해도 가르침의 기회가 되지 말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10.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지 말라.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재미난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매우 안전한 태도다.

그러니 나를 믿으라(그리고 에픽테토스도 함께) 저 기본적인 사회교류 상의 진리를 조금 더 확실히 인식하고 늘 안중에 두고자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하는 편이 친구들과 지인들을 반드시 더 행복하게 하는 일이 되리라.

11. 판단하지 말고 그대로 말하라.

 잠시 숨을 가다듬고, 만약 우리 모두가 동료 인간들을 향한 작은 연민의 마음으로 성급한 판단을 삼가고 인간사를 사실의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세상이 얼마나 많이 좋아질지 상상해봐라

12. 당신의 하루를 반성하라.

  오늘 하루 그대가 한 일들을 하나하나 곰곰이 짚어 보기 전까지는 그대의 연약한 눈꺼풀에게 잠을 허용하지 마세요.

 

 

"그(소크라테스)의 사상은 덕에 대한 윤리적 접근 방식의 원형이다. 그는 덕중에서 지혜를 으뜸 선이자 항상 좋은 유일한 것이라고 간주했다. 왜냐하면 지혜는 나머지 모든 것을 올바로 사용하는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도덕적 책무는 우리의 삶을 검토하는 것이며 이성은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최고의 안내자이다."

여기서 나는 우리의 삶을 검토하는 것이라는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든다. 검토하면 메타인지가 늘어나고 메타인지가 늘어나면 이성이 확장된다.

 

"스토아학파는 의무적인 선들을 자기 성품의 고결성을 손상하지 않는 한에서 추구하거나 기피해야 할 '선호할만한 무관심의 대상들'과 '선호할만하지 않는 무관심의 대상들'로 분류했다"

덕을 제외하고는 무관심이지만 그 무관심도 선호와 비선호로 나누어서 구분하자. 

 

 

 이 책을 추천한다면 별 5점 중에 나는 5점이다. 나는 이 철학과 사상이 굉장히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나는 이 철학을 만나고 앞으로 삶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왜냐하면 나에게 큰 변화를 주었다고 내 마음속에서 울림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은 조금 더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바뀌었다. 물론 지금의 느낌이 평생 간다고 할 수 없지만 항상 스토아주의를 생각하며 기억하면 내가 살아가는 삶이 앞으로 안정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의 삶은 이성이 전부이며 그 이상은 없다. 하지만 그 이성 속에는 상대방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볼 수 있는 이성이며 감정을 무시하는 이성이 아니다. 모든 통합적인 것은 볼 수 있는 이성이다. 그것이 내 삶의 전부이고 모든 것을 전부 이성적으로 볼 수 있을 때 나는 죽음 또한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의 목적이 묻는다면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인간의 상징인 이성을 최고로 여기는 것인 철학이 내 삶의 목적이다라고 답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철학 속에서 이성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배우는 중이다. 

 

(19.7.10)

라고 생각했었으나 스토아사상에서 중시하는 이성이 적어도 지금 내가 생각하는 뇌과학적인면에서 보았을때 합리적이라고 볼수없다고 생각하기때문에 나는 통제의이분법이라는 큰 심리적 방법을 제외하고 우선 스토아사상을 넘어가기로 했다. 여하튼 이책을 통해 나의 생각이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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